허리우드 최고미인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결혼과 영화 ‘아이반호’ 줄거리, 사망원인

2023. 5. 3. 20:43재미있는 영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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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인 미녀여배우 리즈 테일러의 결혼, 생애, 영화 아이반호내용, 사망이유

엘리자베스 테일러 1932년 2월 27일 ~ 2011년 3월 23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은 다른말로 바꾸면, 허리우드 여배우 중에서 가장 예쁜 미인은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지요.

그만큼 미국 허리우드에는 정말 대단한 세계적인 미녀 여배우들이 많이 있었지요. 허리우드의 최고미녀 여배우는 세계 최고 미녀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여배우는 한때 세상을 들었다놨다 했을 정도로 대단한 미모를 간직했던 미녀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영화가 바로 ‘아이반호’라는 영화인데, 오늘은 허리우드 최고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녀의 영화 ‘아이반호’를 함께 소개해드리도록하겠어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50~60년대에 허리우드의 최고 미인으로 불리웠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랍니다.

미국 헐리우드 여배우 중에서도 가장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했고, 50,60년대에 미모로써는 세계 최고의 미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있는 여배우가 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입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어렸을 때부터 연기생활을 시작한 아역배우 출신인데, 성인이 되어 대단한 연기력은 물론 물오른 완벽한 미모를 바탕으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전세계의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인기와 환호를 받으면서 50년대, 6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미녀여배우였습니다.

50~60년대에는 미국 허리우드영화가 세계를 석권했던 시기였는데, 허리우드의 중흥기였던 이 시기를 대표하는 미녀여배우가 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입니다.

과거에 많이 회자되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동시기에 허리우드에서 인기가 높았던 데보라 카나 오드리 헵번, 제니퍼 존스, 에바 가드너 등의 여배우들은 99%의 미인이라는 칭호가 붙었는데 반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00%의 미인이라는 칭호가 붙었을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전세계가 인정한 전형적인 미인이었습니다.

이 당시 타임즈지는 ‘보석 사파이어같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라고 그녀의 미모를 극찬했을 정도랍니다.

그만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는 완벽한 미모라고 평가가 이어지면서 , 한 때 전세계인들이 그녀의 청순한 미모에 완전 혼을 빼앗겨 벼렸던 것입니다.

‘작은아씨들’ ‘젊은이의 양지’ ‘아이반호’ ‘내가 마지막 본 파리’ ‘말괄량이 길들이기’ ‘클레오파트라’ ‘자이언트’ ‘나이트워치’ 등 수많은 명작품에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당대 최고의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세계적인 톱스타로 급부상했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한번도 타내기 힘든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미모 못지않게 아주 탁월한 연기력을 보유한 연기자였지요.

이렇게 여배우로서는 최고의 상한가를 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녀였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사생활면에서는 영화만큼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답니다.

놀랍게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무려 8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을 정도로 그녀의 결혼생활을 매우 위태위태했고, 아주 복잡한 남성편력을 갖고 있었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여덟명의 남편 중에는 세계적인 명배우 리차드 버튼이 포함되어 있는데, 리차드 버튼과는 한번 이혼을 한 후 또다시 재결합을 했을 정도로 매우 끈끈한 사랑을 주고받은 것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남자로 자신과 두 번 결혼했던 리차드 버튼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자신이 죽으면,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리처드 버튼의 묘지옆에 함께 묻어달라고 부탁을 했을 정도입니다.

리즈 테일러는 다른 남편들과는 1년에서 길어야 6년 정도밖에 같이 살지않았지만, 리차드 버튼과는 무려 11년 동안 함께 살았을 정도로 리처드 버튼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생애 총 8차례의 결혼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답니다.

명실공히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미인인데, 다소 남자관계가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느정도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인 곁에는 항상 돈과 권력, 그리고 남자들이 꼬이게 마련이지요.

이 정도의 미모를 가진 인기여배우가 한번의 결혼밖에 안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고 보여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미인이라는 평을 받는 그녀이지만, 8번이나 결혼했다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남편은 레리 포튼스키라고 하는 트럭운전사였는데, 그는 리즈 테일러보다 무려 20년 연하의 남편이어서 큰 화제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두사람의 결혼식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절친한 친구인 마이클 잭슨의 농장에서 성대하게 치러져서 큰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두사람은 결혼한 지 5년만에 파경을 맞게되면서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너무나도 예뻐서 그럴까요? 그녀는 8번의 결혼 외에도 종종 뜨거운 염문을 뿌리고 다녔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리차드 버튼과 이혼한 후, 주미 이란대사인 아르데시 자헤디와 서로 눈이 맞아서 염문을 뿌리기도 했는데, 이란의 팔레비국왕의 압력 때문에 두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바람둥이라고 소문난 워런 비티와도 뜨거운 염문을 뿌렸답니다.

허리우드의 최고의 바람둥이와 최고의 미녀가 서로 눈이 맞은 것인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사랑하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하지만, 평생 독신주의를 표방해온 워런 비티와는 결혼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두사람은 결국 뜨거운 염문 후에 이별하게 된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애칭은 ‘리즈 테일러’이지요. 그녀의 이름이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름과 겹치므로, 구별하기 위해서 그녀를 종종 리즈 테일러라고 불렀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가 젊었을 한창시절인 50년~6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아이반호’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같은 최고의 걸작품들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랍니다.

이 50~60년대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가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빛을 발했던 시절이랍니다.

그리고 그녀는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까지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연기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전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90년대까지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여왔을 정도로, 그녀의 인생은 영화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자신에게 남편과 자식들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라고 스스로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01년 70세의 나이에 찍은 ‘디즈 올드 브로드’라는 영화를 끝으로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하게 되었지요.

평생을 최고의 미녀여배우라는 칭송을 들으며 살아갔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만년에 만성 심부전증을 앓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11년 3월 23일 로스엔젤레스의 한병원에서 만성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80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고, 그녀는 네명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키에 관한 것인데요.

영화에서 보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얼굴을 매우 예쁜데 비해, 키가 상대적으로 작고 아담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다른 외국여배우와 비교해서도 키가 작은 편인데, 그녀의 키는 놀랍게도 157cm라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여배우들이 있는데, 에바 가드너의 키는 167cm, 그레이스 켈리의 키는 170cm, 케서린 헵번의 키는 173cm인데 비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60이 안되는 미국여성 치고는 매우 작은 키랍니다.

그녀의 키 157cm는 미국여성의 평균 키에도 훨씬 못미치는 매우 작은 키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최고의 미녀여배우의 지위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미모 때문이랍니다.

그녀의 얼굴이 워낙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녀의 작은 키는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방송에서 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자신은 한번도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요.

즉,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혼외정사는 한번도 한적이 없다는 건데, 이 말이 진실인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교재를 했던 워런 비티와는 대단히 뜨거운 관계였기 때문이지요. 천하의 바람둥이로 소문나 워런 비티가 과연 그녀를 가만히 놔두었을지 의문스럽네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생전에 찍은 영화들 가운데, 걸작품들이 매우 많아서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랍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그녀가 20살의 풋풋했던 시절에 찍었던 시대극영화 ‘아이반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찍은 영화 ‘아이반호’가 대히트치는 바람에, 그녀는 톱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답니다.

20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아이반호’에 미남배우 로버트 테일러, 조안 폰테인 등과 함께 출연했으며, 20살의 풋풋하고 청순한 미모를 과시하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의 로망으로 부상했답니다.

이 영화 ‘아이반호’의 성공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솟을 수 있었으니, 영화 ‘아이반호’야말로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반호’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청순미가 가장 돗보이는 영화라고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아이반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당시 전형적인 미국미인으로 칭송받던 조안 폰테인보다도 더 예쁘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랍니다.

영화 ‘아이반호’는 종래의 인기여배우였던 조안 폰테인으로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쪽으로 인기의 저울추가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즉, 이 영화 이전까지는 조안 폰테인의 시대였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아이반호’에서 다른 여배우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청순미를 과시했으며, 단숨에 세계최고의 미인으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 영화 ‘아이반호’를 보시면, 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계최고의 미인인지를 충분히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아이반호’는 12세기 십자군전쟁이 전개되었을 당시에, 영국의 리처드왕을 섬기는 기사 아이반호의 충절과 영웅담을 그린 영화로서, 기사들의 멋진 결투와 중세 전투장면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시대극입니다.

영화 ‘아이반호’는 조국과 국왕을 지키려는 사나이들의 의리와 굳은 절개, 그리고 배신을 그린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리처드왕의 충성스러운 기사 아이반호를 짝사랑하고 흠모하는 순정을 간직한 유태인소녀 레베카역을 맡아 열연했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영화에서 40~50년 당시 최고 인기여배우로 군림하고 있었던 여배우 조앤 폰테인과 아이반호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열띤 사랑싸움과 경쟁을 벌이는 순정파 레바케로 열연을 펼쳤습니다.

조앤 폰테인과 사랑과 미모대결을 펼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오히려 조앤 폰테인보다는 미모면에서는 한수 위라고 느껴질 정도랍니다.

그렇지만 영화 ‘아이반호’속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유태인혈통이라는 출신성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기사 아이반호와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영국왕실의 공주 출신인 조앤 폰테인에게 아이반호의 사랑을 뺏기고 만답니다.

영화의 마지막장면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조앤 폰테인에게 ‘제가 잠시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반호를 사랑했던 것은 잠시 꾸었던 한낮 꿈이었답니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멘트가 우리의 가슴속에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 영화 아이반호의 줄거리

1952년도 영화. 리처드 소프 감독

출연자 -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조안 폰테인, 조지 센더스

12세기의 영국이 시대적 배경인데, 12세기 당시 영국의  국왕 리차드 1세가 십자군전쟁을 하러 원정을 떠나갔고,

이렇게 국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리차드 1세의 동생 존이 쿠테타를 일으켜 새로운 영국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당시 리차드 1세의 충신이었던 섹슨족출신의 귀족 윌프레드 아이반호는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란 귀족출신의 로위너공주(조앤 폰테인)와 서로 사랑하는 연인관계가 된다.

그런데 귀족이자 지방의 호족인 아버지 세드릭은 정치적인 견해차이로 아들인 아이반호(로버트 테일러)와 의절하고, 아이반호는 아버지의 성을 떠나서 리처드 1세의 십자군 원정길에 합류해서 떠나간다.

영국의 십자군원정이 끝날 무렵에, 영국국왕 리처드 1세는 오스트리아에서 외국군에 붙잡혀 감금당하게 되며,

기사 아이반호는 영국 국내에서 리처드의 동생 존이 반란을 일으켜 영국국왕으로 등극했다고 소식을 접하고 영국으로 잠입해들어간다.

기사 아이반호는 변장을 한 채로 아버지 세드릭의 성으로 몰래 잠입해 들어가고, 그 성에서 자신의 오랜 연인 로위너공주를 만나서 사랑의 회포를 풀게 된다.

그런데 당시 영국은 노르만족의 침략을 받은 이후, 노르만족들이 정권을 잡을 상태로, 원래 영국 토종인 앵글로 섹슨족은 노르만귀족들로부터 심한 냉대와 차별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에,

노르만귀족과 섹슨족 사이는 상당히 안좋은 감정상태에 놓여있었다.

존왕을 떠받들고 있는 귀족들은 대부분 노르만출신의 귀족들이었고, 색슨족들은 정치일선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색슨족 귀족이면서, 원래의 국왕 리처드 1세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있는 기사 아이반호는 성내에서 노르만족들로부터 며칠 후에 존왕이 참석하는 축제가 열리고, 그 축제에서 노르만귀족 간에 마상시합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원래의 국왕 리처드 1세의 왕위복귀를 노리고 있던 아이반호는 존왕과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이 마상결투에 나가 노르만귀족들을 물리친다면,

쇠락해가고 있는 색슨존 백성들을 다시 규합하고,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는, 존왕이 참석하는 마상시합에 직접 참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이탈리아에 감금되어 있는 영국왕 리처드 1세를 석방받기 위해서는 10만냥의 보석금이 필요한 상태이어서, 기사 아이반호는 왕의 석방보석금 10만냥을 모으기 위해 길을 떠나간다.

아버지의 성을 나와서, 홀로 길을 떠나가던 기사 아이반호는 우연히 길에서 노숙하던 유태인족장 아이작이 도둑일당으로부터 강도를 당하는 것을 보고, 그 도둑들을 물리치고 유태인족장을 구출해주었다.

이렇게 유태인족장을 구출해준 인연 때문에, 유태인족장은 아이반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데,

기사 아이반호는 구금당한 리처드국왕의 석방에 필요한 보석금을 보태달라고 유태인족장에게 부탁하면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 때에 유태인족장의 딸 레베카(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멋지고 잘생긴 기사 아이반호를 보고는 첫눈에 홀딱 반해, 그를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된다.

아이반호가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후에, 유태인족장의 딸 레베카가 그의 거처로 몰래 들어와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상당한 양의 보석을 아이반호의 방에 넣고 나가다가 아이반호에게 들키고 말았다.

아이반호는 유태인의 딸이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이같은 호의를 배푼 것을 보고 몹시 놀라워하는데, 레베카는 조건없이 아이반호를 도와주고 싶다는 말만 하고는 돌아가버렸다.

드디어 기사 아이반호(로버트 테일러)는 존왕이 참석하는 축제일날, 직접 마상시합에 참전해서 5명의 노르만출신 기사들을 상대로 마상결투를 갖는다.

아이반호는 혼자서 4명의 노르만 기사들을 모두 물리쳤고, 그리고 이어진 노르만 최고의 실력자 보아길베르와 마지막결투를 벌였고, 보아길베르를 쓰러뜨리지만 자신도 큰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고 만다.

이 시합을 유태인족장과 그의 딸 레베카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레베카는 아이반호가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자, 그를 자신의 집으로 이송시켜서 그를 극진히 간호해주었고,

큰 부상을 입었던 기사 아이반호는 레베카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상시합을 구경을 온 색슨족 백성들 중에는 로빈후드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었는데, 그는 평소에 색슨족들을 천대하는 존왕과 노르만귀족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노르만기사들을 통쾌하게 물리치는 기사 아이반호를 보고는 크게 감동받아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로빈후드는 훗날 아이반호가 구금되었을 때에. 색슨족 민병대들을 규합해서 아이반호를 구출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활을 잘쏘는 영웅 로빈훗은 바로 영화 ‘아이반호’에서 따온 인물이다.

한편 마상시합을 통해서, 존왕은 다섯명의 노르만기사들을 쓰러뜨린 자가 형 리처드왕의 복귀운동을 펼치는 리처드의 충신 아이반호라는 것을 알고, 아이반호가 있는 곳으로 노르만기사 보아길베르와 병사들을 보내서 공격하게 한다.

결국 아이반호와 그를 도와준 유태인족장과 그의 딸 레베카, 아이반호의 아버지 세드릭과 로위너공주 모두 존왕이 파견한 보아길레르의 병사들에게 모두 체포되어, 타킬스톤성의 감옥에 수감되고 만다.

이렇게 기사 아이반호와 레베카, 로위너공주 등 아이반호의 일행이 모두 타킬스톤성에 갇혀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에, 아이반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로빈후드가 민병대를 이끌고 나타났는데,

로빈후드는 바로 아이반호를 구출하기 위해 대규모 민병대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로빈후드의 민병대의 엄청난 성탈환공격이 거세게 이어졌고, 성을 지키던 보아길베르의 병사들은 하나둘씩 죽어나갔으며,

성안에 수감되어 있던 기사 아이반호는 밧줄을 풀어서 감옥에서 빠져나오면서, 성밖의 로빈후드와 합세해서 길베르의 병사들을 물리쳐나갔다.

이처럼 로빈후드 민병대의 군사공격이 워낙 게세게 전개되면서, 패색이 짙어오는 것을 느낀 보아길베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레베카를 데리고 몰래 성을 빠져나갔다.

노르만귀족인 보아길베르는 유태인족장의 딸 레베카의 미모에 홀딱 반해서 그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쿠테타를 일으켜 왕권을 찬탈한 존왕은 비록 리처드를 몰아내고 왕위에 앉았지만, 아직 대다수 색슨족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 그의 권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못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있는 존왕은 포로로 붙잡고 있는 유태인 레베카를 마녀로 몰아서 마녀화형식을 시행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아무 죄도 없는 레베카는 졸지에 존왕에 의해서, 마녀로 몰리게 되었고, 곧 화형을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 때에 기사 아이반호가 존왕의 왕성으로 혼자 들어와서, 레베카에 대한 보석금을 내놓고 그녀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한다.

존왕은 레베카석방의 조건으로 아이반호와 노르만기사 보아길베르의 마상대결을 요구한다.

아이반호는 레베카를 구출하기 위해서 또다시 노르만기사 보아길베르와 목숨을 건 마상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노르만출신 최고의 전사인 보아길베르와 대결을 펼치게 된 아이반호는 치열한 결투를 벌여나가는데, 보아길베르의 거센 공격을 받고 말에서 떨어지는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아이반호는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결국 최고의 전사 보아길베르를 쓰러뜨리고 승리를 함으로써, 유태녀 레베카를 구출할 수 있었다.

바로 이때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원래의 국왕 리처드 1세가 수많은 민병대를 거느리고 마상시합을 벌이고 있는 존왕에게 처들어왔고,

리처드 1세는 존왕과 노르만대신들을 격퇴한 후, 다시 영국의 국왕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시 왕으로 귀환한 리처드국왕은 일등공신인 아이반호를 그의 연인 로위너공주와의 혼인을 주선해 두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게된다.

한편 아이반호를 짝사랑했던 유태녀 레베카는 아이반호가 자신을 구출해주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결국 아이반호는 자신을 택하지 않고 원래의 연인 로위너공주를 부인으로 택하는 것을 보고 마음 깊이 회한을 눈물을 흘리게 된다.

로위너공주는 유태녀 레베카에게 ‘아직도 아이반호를 사랑하는가?’라고 질문했는데,

레베카는 ‘저는 잠시 혼자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꿈을 잠시 훔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저는 다시 저의 자리로 돌아갈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에서 기사 아이반호에 대한 사랑을 접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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