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피살사건의 전모, 범인과 사진, 아들의 아버지 박정희

2021. 6. 18. 19:56사랑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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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피살사건의 진실과 범인, 실제 사진, 아들의 아버지는 정일권?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의 강변3로에서 코로나자동차 안에 있던 젊은 미모의 여성이 총에 맞아숨진 체로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함께 차에 타고있던 한 남성은 다리에 총탄을 맞아 부상당한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미모의 여성은 박정희, 정일권, 이후락 등 당시 제3공화국 권력층과 관련되어 있는 고급요정의 미모의 여종업원이었고, 당시 권력층과 결탁되어 있는 최악의 성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다.

오늘은 제3공화국의 최악의 성스캔들로 악명이 높았던 정인숙피살사건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다.

정인숙이 사망한 지, 무려 5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인숙을 진짜로 살해한 진범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제3공화국의 최대의 미스테리사건이 되었다.

물론 정인숙사건은 당시 곧바로 재판이 열려서 그녀와 함께 차에 타고있던 오빠 정종욱이 살해범으로 판결이 났지만,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정종욱은 자신은 진짜 살해범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하고 있다.

제3공화국 시절 엄청난 미모로 최고권력층의 실세와 유력한 정치인들을 두루 섭렵하고 다니면서 큰 위세를 떨쳤던 고급요정 종업원 정인숙은 과연 누구에게 피살당했던 것일까?

지금부터 정인숙피살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그 정확한 진상을 규명해보겠다!

◆ 정인숙살인사건의 전모, 범인

정인숙은 사망 당시, 3살난 아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녀 아들의 아버지가 누군인지 밝히는 것도 정인숙피살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정인숙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대학가의 젊은이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루머가 나돌아 다녔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라고 ~

이것은 정인숙이 살해될 당시, 키우고있던 3살난 아들의 아버지에 관한 소문이다. 그녀는 피살될 당시에 26살밖에 안됐지만, 이미 3살난 아들을 둔 어엿한 아이의 엄마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의 아빠로 지목된 사람은 70년도 당시 국무총리로 재임하고 있던 정아무개씨를 의미한다.

정인숙은 사망한 당일날, 호텔 라운지에서 한 40대 남성과 만나서 와인을 마셨고, 그 후 그곳에서 ‘Release Me’라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정인숙은 호텔 라운지에서 팝송 ‘Release Me’를 듣고난 후, 밤늦게 호텔을 나서 오빠 정종욱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귀가하던 중, 밤 11경에 합정동 절두산 부근 강변3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두명의 괴한들에 의해서 총격을 받았고, 정인숙은 머리와 가슴 등 두 곳에 총탄을 맞고 사망했고, 오빠 정종욱은 다리에 총탄 한발을 맞고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상당한 정종욱은 그곳을 지나가던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서 경찰신고가 이뤄졌고, 곧이어 경찰이 출동해서 사건수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로써 정인숙피살사건은 세상에 알려졌고, 정인숙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졌다.그런데, 수사 결과, 뜻밖에도 정인숙의 살해범으로 그녀의 오빠 정종욱이 지목되었고, 정종욱은 여동생 살인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형사재판에서 정종욱은 정인숙을 살해한 살인죄가 인정되어서,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며,

대법원 최종심에서는 징역형 20년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정인숙이 피살되던 그날, 그녀를 태우고 차를 몰았던 오빠 정종욱이 여동생살인범으로 지목되어 형사처벌을 받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과연 오빠 정종욱은 정말로 여동생 정인숙을 살해한 것일까?

그렇게 교도소에 수감된 정종욱은 19년 동안 옥살이를 한 끝에 1989년 5월 수감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출옥한다.

출옥한 정종욱은 자신은 여동생 정인숙의 살인범이 아니라고 자신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단지, 정종욱은 사건 당시 권력기관 요원들의 협박과 회유에 못이겨서 마치 자신이 정인숙을 살해한 것처럼 거짓자백을 강요당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동생살해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폭로했다.

과연 정인숙을 진짜로 살해한 살인범은 누구일까?

◆ 정인숙을 살해한 진범 누구?

19년동안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오빠 정종욱은 자신은 결코 정인숙의 살해범이 아니며, 권력기관의 부당한 압력과 공작 때문에, 살해범으로 몰려 처벌을 받았다고 자신의 무고함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사실, 친오빠가 여동생을 그토록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오빠 정종욱은 수년동안 정인숙의 차를 몰면서 그녀의 비서이자 기사역할을 해왔던 그녀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친오빠가 어느날 갑자기 권총으로 여동생을 친히 살해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또한 오빠 정종욱이 정인숙을 살해하였을 당시 사용한 권총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빠 정종욱의 주장대로 과연 정인숙은 권력기관의 공작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이 사실일까?

정인숙피살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 중앙정보부장은 김형욱이었고, 얼마 후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을 그만둔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한 적이 있다.

그리고 김형욱 회고록에서 그는 정인숙피살사건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김형욱의 주장에 의하면, 정인숙 피살 당시에 자신은 정인숙사건을 지휘한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김형욱은 당시의 정황을 살펴볼 때에, 정인숙은 최고권력층의 공작에 의해서 권력기관 요원들에 의해 암살당한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인숙이 암살당한 이유는 그녀가 제3공화국의 최고권력층의 권력자들과 성스캔들을 많이 일으켰고, 그럼으로서 그녀가 최고권력자들의 약점이나 부조리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정인숙은 당시 우리나라의 최고 요정으로 손꼽히는 선운각을 비롯한 여러 고급요정에서 접대부로 일하고 있었고,

요정가에서 미모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그녀는 인기가 매우 높아 많은 정치인들을 단골손님으로 두고 있었다.

60~70년대에는 요정정치가 유행했던 시기로, 권력층이나 유력정치인들이 주로 요정에 모여 비밀회담을 열거나, 중요한 정책결정을 논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났던 시기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필히 미인들이 따라붙는 것이 진리가 아닌가!

자연히 권력자들이나 유력한 정치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던 요정에는 내노라하는 미녀호스티스들이 많이 공급되었고,

그당시 선운각 같은 고급요정에서 일하고 있던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정인숙은 당연히 최고권력층의 눈에 띠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미모도 출충할 뿐만 아니라, 영어 회화실력도 뛰어났던 정인숙은 미국 등 유럽의 외교관과의 회담이나 회의에도 자주 불려나가는 등,

요정에서의 그녀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60년대 후반 당시 정인숙은 우리니라 최고의 고급요정인 선운각의 최고의 미녀종업원으로 큰 두각을 나타냈었고,

그곳을 드나들던 최고권력자의 눈에 들면서, 최고권력자와의 성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정인숙은 원래 명지전문대학교를 중퇴하였는데, 그녀는 명문대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오빠들한테서 영어회화를 배우고 익혀서 영어회화 만큼은 아주 잘해서, 외국인과 거침없이 영어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그런데, 정인숙은 당시 KBS 방송국의 ‘태양은 늙지 않는다’라는 인기라디오 연재물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방송작가 장사공과 서로 눈이 맞아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소문에 의하면, 정인숙은 장사공과 깊은 연애에 빠져서 두사람의 관계가 동거까지 발전했다고 하지만,

정인숙의 오만한 성격과 지나친 사치와 때문에, 장사공과의 관계는 1년만에 파탄나고 만다.

그 후 생활비가 필요했던 정인숙은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서 충무로에서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만난 한 마담의 주선으로 ‘선운각’이라고 하는 고급요정에 여종업원으로 취업하게 된다.

‘선운각’에서 영어회화를 잘하는 최고의 미인접대부로 큰 인기를 끌게된 정인숙은 여러명의 고위급 정치인들을 상대했고, 심지어 최고권력자까지 접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정인숙이 고급요정의 최고미녀 접대부로 이름을 떨치면서 활동하고 있을 무렵인 1960년대 후반, 그녀는 미혼인 상태로 임신을 하게 되고, 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아이를 출산한 정인숙은 그 때부터 요정출입을 금지하고, 자택에서 자신이 낳은 아들을 양육하게 됐다.

그 당시 그녀가 출산한 아이의 아버지가 제3공화국의 최고위급 실력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이렇게 정인숙이 최고권력자의 아들을 출산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나가자,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그녀의 성스캔들이 크게 회자되면서, 정인숙의 성스캔들은 우리나라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정인숙 성스캔들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정치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된 박정희 정권은 더 이상의 언론의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서, 정인숙을 미국으로 반강제로 출국시켰다.

권력층의 압력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던 정인숙은 1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양육했다.

그렇지만, 한 군데 오래 머물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정인숙은 미국생활 1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한국에서 그녀의 자유분방한 생활이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는 정인숙이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최고지도자의 아이를 출산했다’고 떠벌이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인숙이 최고지도자를 운운하면서 떠벌이고 다녔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경솔한 말 한마디로 인해서 최고권력자의 위신이 심하게 훼손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연히 국가지도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고 다니는 그녀를 최고권력층인 박정희정권은 탐탐치않게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뒤숭숭한 상황에서, 호텔에 머물다가 밤늦게 자동차를 타고 귀가하던 정인숙은 1970년 5월, 강변3로의 자동차안에서 누군가가 쏜 총탄에 맞아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사망 당시, 정인숙은 최고권력층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해서, 권력기관의 요원들에 의해서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 당시 최고지도자의 아이를 낳았다고 떠벌이고 다녔고, 이로써 최고권력자의 위신을 크게 훼손함으로써, 권력기관이 그녀를 제거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 당시 정인숙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박정희나 정일권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리고, 사망한 정인숙이 소지하고 있던 수첩에는 박종규경호실장, 이후락 대사, 김형욱 정보부장, 몇몇의 재벌회장들,

여러명의 장차관, 심지어 박정희대통령까지 포함해 유력한 정관계인사 26명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고급요정의 종업원출신이었던 정인숙의 수첩에 이런 최고위층 인사들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그녀가 최고위층 권력자들을 상대했다는 성스캔들이 널리 퍼졌고, 세상을 온통 시끄럽게 만들었다.

정인숙을 살해한 범인이 오빠 정종욱인지, 아니면 최고권력층인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시중에는 여러가지 소문들만 난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90년대 중반 성인으로 성장한 정인숙아들 정성일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환했다.

미국에서 조부모의 손에 의해서 자랐던 정인숙아들 정성일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으로 입국했고,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까지 냈다.

정성일은 자신을 길러준 외할머니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정일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정성일은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한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내서, 진실을 밝히고자 시도했다.

그렇지만, 친자확인소송 도중에 정일권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소송은 유야무야되었고, 정성일의 아버지가 정일권인지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정인숙은 당대 최고 권력층과 염문을 뿌렸던 성스캔들의 주인공이었고, 그녀가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냐를 놓고

여러 논란에 휩싸였던 정신숙피살사건은 제3공화국의 최대의 스캔들이자, 최대의 미스테리사건이 되었다.

최근까지도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리고 정인숙을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체로 남아있다.

◆ 정인숙을 살해한 범인은 권력기관?

정인숙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정인숙을 살해한 살해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요정의 접대부 정인숙과 관계를 갖고 원치않게도 아이를 낳은 그 아버지는 권력핵심층의 인물일 것이고,

그는 요정 여종업원과 관계를 가졌다는 추문으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정치적 이유에서, 추문의 원천인 정인숙을 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 당시 정인숙과 관계를 맺고 그녀를 죽일만한 큰 권력을 가진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박정희와 정일권 두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사람은 한나라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고, 다른 사람은 한나라의 명목상 행정부의 수장 국무총리이다.

그런데, 몇 년 전 경향신문 기자의 입에서, 정인숙사건에 관한 매우 중요한 증언이 폭로되어 나왔다.

1982년 당시 손충무 경향신문 기자가 미국에 있었는데, 그 시절 한국에서 박종규 전경호실장이 올림픽 유치문제로 마국으로 건너온 적이 있었고, 이 시기에 손충무씨가 박종규를 위싱턴에서 만났다고 한다.

원래 친분이 있었던 두사람이 위싱턴에서 만나 함께 술도 먹고, 골프도 치면서 며칠동안 함께 지냈는데, 손충무씨가 박종규 전경호실장에서 넌지시 정인숙피살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박종규는 손충무에게 정인숙피살은 우리 부하들이 했다고 흔쾌히 답변했다고 한다.

정인숙 피살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난 후에 박종규 전경호실장의 입에 의해서 정인숙피살을 주도한 세력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손충무 전경향신문 기자의 육성증언이므로 팩트라고 보면 정답이다.

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후, 이 애가 최고지도자의 아들이라고 떠벌이고 다니는 바람에, 대통령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경호실에서 손을 써서 추문의 근원지인 정인숙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정인숙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1년 후인 1971년도에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중요한 시기였고, 다시 대통령 3선에 출마하려는 박정희대통령의 대선가도에 그 어떤 흠집이 발생해서는 안되는 예민한 시기였다.

이 당시 정인숙은 정일권국무총리의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녀 스스로 최고권력자의 아들을 낳았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바람에 대통령의 명예가 크게 훼손됐고,

결국 최고권력층의 눈밖에 나게 되고, 성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권력기관 요원들에 의해서 제거되었다고 판단된다.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는 정아무개씨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녀를 암살한 것은 당시 권력기관인 경호실인 것으로 추정된다.

26살 한창 꽃다운 나이에 권력기관의 음모에 의해서 생을 마감한 정인숙은 제3공화국 당시 크게 유행했던 우리나라 요정정치의 최고의 희생양이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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