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대 최고의 싸움꾼 시라소니 이성순, 동대문사단의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전말, 이정재

2021. 7. 8. 23:09사랑방 이야기

반응형

한국최고의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동대문사단 이정재 의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전모

시라소니 1916년~1983년 키 175cm

해방전후에 극동아시아를 뒤흔들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괴력과 싸움실력을 가진 불세출의 싸움꾼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와 중국을 넘나들면서 난다긴다 하는 국제주먹들은 쓰러뜨리면서 한반도는 물론 동양최고의 주먹, 동양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리워졌던 전설적인 싸움꾼이다.

시라소니가 박치기를 주특기로 사용하면서, 북한과 만주, 북경, 천진 등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라성 같은 국제주먹을 쓰러뜨리면서 당대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했던 그의 싸움일대기는 그 어떤 주먹도 쫒아올 수 없는 넘사벽이며, 신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대 주먹세계에서는 임꺽정, 신마적, 김두한 등의 주먹들이 당대의 최고의 주먹으로 대단한 명성을 떨쳐왔는데, 엄밀히 말해 한국 역사상 최고의 싸움꾼은 이들이 아닌 시라소니 이성순이라고 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임꺽정, 신마적, 김두한 등은 혼자서 싸움신화를 개척해나간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주먹조직을 갖고있었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자신들의 주먹조직을 크게 활용했지만,

시라소니는 조직도 없이 오직 혼자서 적진으로 뛰어들어 내노라하는 국제주먹들을 모두 물리치고는 당대 최고의 싸움꾼으로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라소니는 싸움에 대한 자존심이 무척 쎈 사람이다. 시라소니는 싸움을 할 때에 상대방이 몇 명인지,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보다 쎄다고 알려진 싸움꾼이 있다고 하면, 유불리를 전혀 따지지않고 곧바로 그에게 도전장을 던져서 반드시 그를 꺾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다.

시라소니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중국 천진에서 일어난 시라소니와 카네미야일당과의 1 대 40의 싸움이다.

천진일대에서 주민들에게 세금을 뜯어내며 행패를 부리던 깡패집단 카네미야 주먹조직이 있었는데,

자신의 고향친구를 납치해간 카네미야의 아지트로 혈혈단신 혼자서 쳐들어간 시라소니는 카네미야 부하 40명과 1 대 40의 대결을 펼쳐서 20명의 조직원들을 쓰러뜨리고는 카네미야의 항복을 받아내는 놀랄만한 싸움성과를 이룩해냈다.

이 1 대 40의 싸움은 우리나라 주먹역사상 한 개인이 이룩한 가장 눈부신 싸움의 성과로 기록되면서, 시라소니의 명성을 크게 드높여주었던 주먹계의 전설적인 싸움일화가 되었다.

또한 시라소니는 일약 21살 때에 함경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과의 맞대결을 펼쳐서 ‘공중걸이 박치기’로 그를 쓰러뜨렸고,

신의주의 악명높은 칼잡이 김장손과 맞대결을 벌여 통쾌한 KO승을 거두면서,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면서 자자한 명성을 떨친다.

신의주에서 악명높은 김장손이라는 칼잡이와 맞대결을 펼쳤는데, 시라소니는 사시미칼을 들고 목을 찌르려고 하는 김장손보다 한템포 빠르게 박치기공격을 가해 KO시켜 쓰러뜨리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게 된다.

사시미칼을 가진 상대와 겨뤄 맨손으로 맞서서 단 한방의 박치기공격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엄청난 싸움성과를 거둔 시라소니는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최고의 싸움꾼’ ‘싸움천재’라고 불리우면서 북한최고의 주먹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다.

그렇다고, 시라소니는 싸움에서 박치기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며, 주먹, 무릎, 팔꿈치, 발 등 그의 몸의 단단한 부분들은 모두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무기로 사용했다.

시라소니는 왠만한 똘마니들에게는 박치기를 사용하지않고 단지 주먹과 발차기만을 사용해서 간단하게 쓰러뜨리곤 했다. 왜냐하면 박치기공격은 너무도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목 정도 되는 강한 상대방과의 싸움에서만 마지막 피니쉬공격으로 박치기공격을 사용했던 것이다.

칼보다도 더 빠른 놀랄만한 박치기기술을 보유한 시라소니는 그 후, 만주와 중국대륙으로 진출해서

봉천의 이상대와 유조구의 신마적, 상해의 하야시, 천진의 카네미야조직, 북경의 오야붕 구로야마, 쿵푸의 대가 마오 등 중국의 내노라하는 국제주먹들과 대결을 펼쳐 모두 쓰러뜨리면서, 전설과도 같은 그만의 놀라운 싸움신화를 만들어나갔다.

◆ 시라소니, 신마적의 오른팔 해학기와 대결

또한 놀라운 것은 시라소니가 1937년도에 만주 봉천(심양)에 진출해서, 그 지역의 주먹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주먹황제로 군림하고 있던 신마적조직과도 대결을 펼친 놀라운 전과도 갖고 있다.

만주 봉천의 유흥가인 유조구거리에서 자신만의 주먹나와바리를 구축해 주먹조직의 오야붕으로 군림하고 있던 신마적(엄동욱)은 그 지역 상인들에게 세금을 뜯어먹으면서 100여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먹황제였다.

그런데, 자신의 신의주친구가 신마적부하들에게 얻어맞는 등 괴롭힘을 당하자, 시라소니는 혼자서 신마적조직원 7명과 대결을 펼쳐서 그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면서 만주의 주먹세계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당시 시라소니와 신마적간의 일대일 맞대결이 이뤄질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는데, 실제로 두사람간의 맞대결을 성사되지 않했다.

대신 신마적을 대신해서 그를 응징하러 나온 신마적의 오른팔 해학기와 시라소니간의 맞대결을 펼쳤는데, 그 결과는 싱겁게도 8초만에 시라소니의 통쾌한 KO승으로 끝났다.

그 당시 유조구지역의 시장 앞마당에서 신마적조직의 2인자인 해학기가 10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시라소니를 포위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낭만파주먹 답게 해학기는 시라소니에게 맞대결을 제안했고,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두사람간 맞대결을 벌어졌다.

프로복싱 웰터급 만주챔피언을 지냈을 정도로 주먹이 상당히 강했던 해학기가 먼저 시라소니에게 달려가면서 강력한 오른주먹을 뻗었다.

‘간다’라고 소리치면서 앞으로 달려나간 해학기가 자신의 솥뚜껑 같은 오른주먹을 날렸고, 그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해학기는 앞쪽으로 고목나무가 고꾸라지듯이 쓰러지고 말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분명히 주먹을 먼저 날린 사람은 해학기였지만, 주먹을 날린 해학기가 먼저 땅바닥으로 뻗어버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당시의 상황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서 주변사람들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몰랐지만, 이 때의 상황은 이렇다.

해학기가 선제적으로 주먹을 날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한템포 더 빠르게 시라소니가 먼저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공중걸이 박치기’를 해학기의 이마에 들이받았고,

동시에 시라소니는 쓰러지려는 해학기의 옆구리를 재빨리 무릎치기로 찍었고, 이 두 번의 동시공격으로 큰 충격을 받은 해학기는 그대로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시라소니는 눈깜짝할 사이에 박치기와 무릎치기의 연속공격을 가해 주먹을 날리려고 하는 해학기를 먼저 공격해서 간발의 차이로 그를 KO시켜버린 것이다.

세상 둘째가라하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엄청난 주먹실력을 보유한 신마적조직의 2인자인 해학기가 주먹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시라소니의 연속공격을 받아 그대로 실신 KO패당하고 만 것이다.

신마적의 나와바리에서 신마적 조직원 7명을 모두 쓰러뜨리고, 또다시 신마적의 오른팔 해학기마저 단 두방의 공격으로 쓰러뜨린 시라소니는 만주에서도 그만의 놀랄만한 싸움신화를 만들어나갔다.

이 때에 신마적은 자신의 부하들을 무참히도 박살낸 시라소니를 철저하게 응징할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두사람의 대결을 이뤄지지 않았다.

무려 80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시라소니를 찾아가 시라소니를 포위한 신마적이었지만, 일대일 맞대결을 벌이자고 제안한 시라소니의 배짱과 용력에 겁을 먹은 신마적은 싸움대신 손을 내밀어서 결국 두사람은 극적인 화해를 하게된다.

이때 신마적이 시라소니와의 맞대결을 피하고 화해를 했던 이유는 너무도 당연했다.

조직도 패거리도 없이 독불장군처럼 활동하는 시라소니와 싸워서 이긴다고 해도 본전이고, 만일 진다면 자신의 오야붕자리와 모든 이권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만주 봉천지역에서의 시라소니와 신마적간의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오직 시라소니 한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하 80명을 데리고 쳐들어간 신마적이 사실상 패배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만일 신마적이 부하들을 전혀 데리고 가지않고 혼자서 시라소니를 찾아갔다면, 두사람간의 일대일 맞대결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는 누가 보더라도 시라소니의 KO승으로 끝이났을 것이다.

자, 이렇게 시라소니는 북한을 주먹으로 평정하고 난 후, 만주와 중국에 진출해서 그지역의 떵떵거리는 국제주먹들을 모두 쓰러뜨리면서 동양최고의 싸움꾼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 이정재, 동대문주먹사단의 오야붕으로 등극

그리고 1945년 해방이 된 그 이듬해인 1946년도에 만주와 신의주에서 활동하던 시라소니는 남한으로 월남했고, 서울에 자리잡으면서 그만의 새로운 인생 제 2막을 열어나간다.

이제 오늘의 주제인 ‘시라소니 린치사건’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주먹역사상 가장 잔인한 테러사건으로 기록된 ‘시라소니 린치사건’은 시라소니와 이정재간의 이해득실이 얽혀서 일어난 비극적인 린치사건이다.

시라소니 린치사건은 1953년도 8월달에 동대문에서 일어난 집단폭행사건이다.

이때에 만 37였던 시라소니 이성순은 이정재를 만나기 위해 동대문 상인연합회 회장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 사무실안에 모여있던 20여명의 이정재부하들은 그곳을 방문한 시라소니를 기습적으로 공격했고,

그 사무실안에서는 쇠파이프와 손도끼, 삽자루 등 치명적인 무기로 중무장한 조직원들과 맨손의 시라소니간의 생사를 건 치열한 난투극이 벌여졌다.

시라소니 린치사건으로 기록된 이 폭행사건은 우리나라 주먹계를 발칵 뒤짚어버렸다.

이 린치사건으로 인해서 일대일로 싸움을 벌이는 낭만파시대는 끝이 나고, 폭력조직이 집단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조직폭행의 시대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집단폭행의 시대를 연 사람은 바로 동대문주먹조직의 오야붕 이정재였다.

이정재는 원래 한국전쟁 이전에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했던 사람이었는데, 김두한의 부하로 들어가면서

김두한의 천거로 일제시대 때에 반도의용정신대 총무로 들어가 일하면서, 우연히 주먹계에 진입하게된 사람이다.

이정재는 이천출신으로 명문인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상당한 인텔리로서 주먹계에 뛰어든 좀 이색적인 사람이다.

이정재는 힘과 완력이 엄청 쎄서 전국씨름대회에 출전해서 여러번 우승을 하면서, 황소를 3마리나 탄 당대의 대단한 씨름꾼출신이었다.

그런 이정재가 동대문시장에서 행패를 부리던 양아치 몇 명을 손봐준 것이 인연이 되어서 김두한의 눈에 뜨게 되었고,

김두한의 천거로 반도의용정신대의 총무를 했으며, 해방 후엔 대한청년단 종로구 동부단장직에 오르면서, 주먹계의 거물급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정재는 두뇌가 매우 명석한 인물인데, 경제적 이권에 대한 두뇌회전도 무척 빨라서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어렵지않게 획득하게 된다.

6·25전쟁 이후, 평소 동대문시장의 이권에 눈독을 들여온 이정재는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동대문시장 부지 3,000평을 정치적인 백을 이용해서 헐값에 매입하고,

그 땅을 전국에서 모집한 상인들에게 비싼값의 렌탈비를 받고 임대하는 방법으로 엄청난 이득을 챙겼고, 그리고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만들어 자신이 스스로 상인연합회 회장이 되어서 동대문시장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행세했다.

참으로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 아닌가! 이정재는 주먹이라기 보다는 이권과 권모술수가 뛰어난 책략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원래 동대문쪽에서 건달노릇을 했던 이정재는 6·25전쟁 이후 폐허가된 동대문시장 부지를 남의 돈을 빌려서 그 토지를 권력의 백을 이용해서 헐값에 매입해서, 동대문 시장터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많은 상인들을 모집해서 자신의 땅위에다 각각의 상인들로 하여금 상가건물을 짓게하였고,

스스로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그 상인들에게 땅렌탈비와 관리비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의 임대료를 걷어내면서 일약 동대문시장의 새로운 갑부로 떠올랐다.

즉, 이정재는 정치적인 백그라운드와 인맥을 이용해서 자신의 돈은 한푼도 들이지않고, 3,000평이나 되는 동대문시장의 어엿한 주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동대문상가로부터 매달 걷어들이는 막대한양의 임대료와 관리비로 졸지에 동대문의 재벌로 우뚝 솟아오른다.

이정재는 자신의 돈은 한푼 들이지않고 인맥과 백그라운드만 이용해서 졸지에 동대문 상인연합회 회장이라는 엄청난 지위와 돈을 모두 얻어냈으니, 이 사람의 두뇌와 술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졸지에 동대문시장이라고 하는 거대한 이권업체의 수장이 되었으니, 그 다음 과정은 이 거대한 자신의 이권을 지켜줄 수 있는 탄탄한 주먹조직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이정재는 동대문시장의 회장이 됨과 동시에 여러주먹들을 끌어모아 동대문주먹사단을 창립하게 된다.

마침 김두한이 국회의원 출마로 종로의 주먹조직이 와해된 틈을 사서, 이정재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동대문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주먹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게 된다.

이정재는 동대문일대에서 영향력이 있는 조열승과 임화수, 차석환등 거물급 주먹들을 포섭해서 7형제의 의를 맺고,

자신의 6촌동생 이석재, 김동진, 고일심, 이기만 등 여러명의 주먹들을 고용해서 동대문 주먹사단을 결성한 후, 스스로 오야붕으로 등극한다.

동대문시장연합회 회장으로 군림하면서, 동대문시장의 상권과 동대문 주먹조직의 오야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거머쥔 이정재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고, 그의 아성에 도전할 위협세력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이정재에게 독불장군 시라소니가 찾아오면서, 그의 아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두사람 간에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마찰이 일어나게 된다.

평생 일대일 맞대결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싸움천재 시라소니이지만, 그런 시라소니도 동대문사단의 이정재집단에게 아주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시라소니 린치사건’이 그것인데, 시라소니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비참했던 이정재주먹집단의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전모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 이정재 동대문 주먹사단의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전말

이렇게 이정재가 동대문시장을 장악한 후, 동대문에서 자신의 주먹세계를 열어나가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시라소니가 동대문에 나타났다.

시라소니가 동대문에 이정재회장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시라소니는 원래 명동파에 속한 주먹이었고, 정팔이 주도하는 중앙극장파에서 식객노릇을 하고 있었다.

주먹조직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라소니는 이화룡의 명동파와 정팔의 중앙극장파를 모두 아우르는 조정자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시라소니가 느닷없이 동대문파의 오야붕 이정재를 찾아온 것인데, 바로 돈 때문이다. 시라소니는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동생들이 많았고, 씀씀이가 커서 수시로 돈이 필요했다.

시라소니는 평소에 잘 알고있는 이정재에게 종종 찾아가서 용돈을 타냈고, 이번에도 동대문회장 사무실로 찾아가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시라소니가 동대문에 와서 이정재에게 여러차례에 걸쳐서 용돈을 요구했는데, 이정재는 그 때마다 시라소니에게 스스럼없이 돈을 건네줬던 것은 사실이다.

이같이 시라소니가 이정재에게 돈을 타낼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시라소니가 이정재를 위기에서 구출해준 인연 때문이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으로 피난갔을 때, 부산시장 부근에서 10명의 건달들에게 둘러쌓여 얻어맞던 이정재를 구해준 것이 바로 시라소니였다.

부산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던 이정재는 그곳 터줏대감격인 건달들과 이권문제로 시비가 붙어 10여명의 건달들과 싸움을 벌였는데, 시간이 가면서 이정재가 수세에 몰렸고, 이정재가 건달들에게 두들겨맞으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이 때에 이곳을 지나가던 시라소니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그 싸움에 개입했는데, 시라소니는 이정재를 때리던 부산건달들을 모두 두들겨패서 쫒아버리고, 이정재를 죽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이정재는 시라소니와 서울에서 다시 만나 호형호제하면서 친한 관계로 발전한다.

이정재로서는 자신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을 도와준 시라소니가 생명의 은인으로서 큰 고마움을 느꼈고,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극진히 대우했다.

그리고 시라소니가 이정재보다 나이가 한 살 위여서 두사람은 이런 인연으로 호형호제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정재가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동대문터 부지 3,000평을 헐값에 매입해서 보유했기 때문이다.

돈 한푼 없었던 이정재가 그 거대한 동대문부지를 헐값에 불하받게 도와준 사람 또한 시라소니였다.

당시 시라소니는 꽤 인맥이 넓었는데, 같은 신의주출신의 고향선배가 서울시청의 간부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정재의 부탁을 받은 시라소니가 고향선배에게 부탁해서 이정재가 동대문부지를 서울시로부터 헐값으로 불하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또한 동대문부지를 매입할 자금을 빌려줄 사람도 시라소니가 소개해줬는데, 땡전 한푼 없던 이정재는 시라소니가 소개해준 사람에게서 돈을 빌려서 동대문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즉, 돈 한푼 없었던 이정재가 3,000평이나 되는 거대한 동대문부지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라소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시라소니는 이정재에게는 생명의 은인일 뿐만 아니라, 이정재가 동대문시장 회장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일등공신인 셈이다.

그러므로 시라소니로서는 종종 동대문에 들러서 이정재회장에게 용돈을 타낼만한 충분한 이유와 명분이 있는 셈이다.

시라소니가 이정재로부터 여러차례에 걸쳐서 용돈을 뜯어냈지만, 이것은 단순한 돈갈취가 아니라, 시라소니로서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이정재로서는 시라소니에게 고마움에 대한 보답차원에서 돈을 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시라소니가 이정재회장에게 돈을 받아낸 것은 어느정도는 정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라소니가 이정재회장에게 돈을 요구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고, 이정재에게는 점점 부담이 되고있었다.

이정재로서는 그동안 충분할 정도로 시라소니에게 돈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라소니가 또다시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있으니,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시라소니의 거듭된 돈요구에 점점 짜증이 나게되었다.

시라소니가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오지않고 사람을 시켜서 이정재에게 돈 5,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고, 거기에다가 추가로 동대문시장의 점포 몇 개를 배당해줄 것까지 요구했다.

이정재는 곧바로 동대문 조직원들을 불러모으며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이정재는 동생들 앞에서 ‘시라소니가 나를 너무 업수이여기는 것 아냐!’라고 일갈을 퍼부었고,

조직원 중 한명이 ‘시라소니의 행패를 그대로 놔뒀다간 더 골치아픈 일이 생기니까, 이 참에 시라소니를 바짝 태워버립시다!’라는 제안을 했다.

시라소니의 안하무인겪인 이런 당돌한 요구에 이정재와 그의 부하들은 엄청나게 분노했고, 마침내 눈에 가시같은 시라소니를 단단히 손보겠다는 결정을 했다.

당시 이정재는 서울에서 가장 큰 동대문시장을 총괄하는 회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와 호형호제하는 시라소니는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을 위해서 동대문시장 점포 몇 개를 제공해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좀 있는 듯하다. 동대문파에서는 시라소니가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시라소니쪽에서는 몇 번 용돈을 얻어간 적은 있지만, 거액의 돈을 요구한 적은 없고, 그냥 실향민을 위해 점포 몇 개만 분양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임대료를 내겠다는 조건과 함께!

아뭏튼 누구의 주장이 맞든 상관없이 동대문파에서는 동대문주먹사단의 오야붕이 된 이정재를 하대하는 등 그를 얕잡아보는 듯한 행동을 하는 눈에 가시 같은 시라소니를 더 이상 그대로 놔둘 수만 없는 상황이었다.

이정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시라소니를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난 ‘시라소니 린치사건’은 시라소니가 먼저 동대문회장 사무실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이정재쪽에서 미리 테러준비를 다 해놓은 후에 심부름꾼을 보내서 시라소니로 하여금 동대문회장 사무실건물로 오도록 유혹을 했다.

즉, 이정재와 부하들이 시라소니를 제거할 모든 준비를 다 갖춰놓고서, 시라소니에게 돈을 줄 것처럼 유혹해서 그를 동대문회장 건물로 오도록 유인을 했던 것이다.

시라소니가 동대문사무실로 오면, 그를 쓰러뜨릴 돌격부대원 30명을 미리 배치해놓았고, 동대문조직의 치밀한 작전하에 시라소니를 동대문사무실로 유인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대문주먹패의 행동은 있어서는 안될 굉장히 비열한 짓이다. 전쟁을 하더라도 국가간에 미리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한 사람을 때려잡기 위해서 그사람을 좋은말로 유인하고, 그 장소에 오직 한 사람을 때려잡기 위해서 30명이나 되는 장정들을 배치해놓았고,

거기다가 쇠파이프, 손도끼, 삽자루 같은 흉악한 무기들까지 준비해뒀다고 하니, 이는 역대 주먹세계에서는 전혀 없었던 아주 잔인하고 비열한 짓을 한 것이다.

시라소니를 공격할 조직원들을 1차저지선과 2차저지선의 두군대로 나눠서 배치했고, 1차저지선은 동대문사무실 건물 앞 50m 되는 지점에 있는 전당포부근으로

이곳에는 8명의 고등학생 깡패들을 배치해놓았고, 2차저지선은 동대문건물 사무실로 이곳에는 20명의 조직원들을 배치해놓았다.

이정재는 동대문사단에서 싸움을 잘하는 최정예 행동대원 20명을 뽑았는데, 이들은 모두 중간보스급 이상의 주먹들로서 동대문에서 난다긴다 하는 뛰어난 주먹들이었다.

김사범이 총 지휘를 맡고, 조열승과 임화수, 이석재와 오영환, 고일심, 김양수, 이명국, 이기만, 차석준, 김태호, 이천일, 그리고 행동대장 김동진과 그의 부하 두명, 그 외에도 5명의 행동대원등 총 20명의 조직원들이 동대문사무실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 밖의 전당포부근에는 8명의 학생주먹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들은 고등학생깡패들로 두목격인 신씨를 위시로 해서 학교에서 패싸움으로 말썽 깨나 피우는 학생파 건달들이었고,

이들은 1차저지선인 전당포부근에서 먼저 시라소니를 만나 그를 저지하기로 되어있었다.

이렇게 동대문파는 시라소니 한사람을 때려잡기 위해 아주 치밀한 사전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1953년 8월 어느날, 이런 동대문파의 음모를 전혀 눈치채지못한 시라소니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휘파람을 불면서 동대문사무실을 찾아갔다.

시라소니가 동대문회장 사무실로 오기 위해서 빠른 걸음으로 1차저지선인 전당포앞으로 걸어가자, 그 부근에 있던 학생깡패 8명이 그를 막아세웠다.

두목격인 신씨가 지나가는 시라소니의 어깨를 툭 치면서 시비를 걸었고, 시라소니가 그냥 무시하고 걸어가자, 이번에는 신씨가 뒤에서 시라소니의 어깨를 손으로 잡아챘다.

그러자, 학생들이 자신에게 싸움을 걸고있다는 직감을 한 시라소니는 신속하게 그 학생의 복부에 주먹을 날려서 그를 쓰러뜨렸다.

그러자, 나머지 학생들이 시라소니를 에워쌓고, 8대 1의 싸움이 시작됐다.

시라소니는 앞에 있는 두명의 학생들의 턱과 복부를 주먹으로 연속적으로 강타해서 쓰러뜨렸고, 왼쪽옆과 오른쪽옆에 있는 또다른 학생들을 오른발과 왼발로 걷어차서 또다시 쓰러뜨렸다.

또한 시라소니는 엄청 빠른 스피드로 좌충우돌하면서 강력한 주먹과 탄력있는 발차기로 또다른 학생들을 모두 가격해서 쓰러뜨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두목 최씨의 턱을 오른발로 가격해서 그를 고꾸라뜨리면서, 학생깡패 8명을 모두 쓰러뜨렸다.

시라소니는 학생들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주특기인 박치기를 한번도 쓰지않고, 오직 주먹과 발차기만을 이용해서 8명의 학생깡패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왜냐하면, 시라소니는 거물급이 아니면 박치기를 거의 쓰지않는데, 박치기는 치명적인 위력이 있기 때문에, 오직 강자한테만 사용하고, 똘마니들한테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시라소니의 싸움법칙이다.

시라소니는 학생들과의 싸움에서 단 한 대도 맞지않았고, 단 5분만에 8명의 학생깡패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시라소니에게 얻어맞은 학생들은 길거리바닥에 쓰러져서 누구는 코피가 터지고, 누구는 입술이 깨지고 누구는 머리가 깨지는 등 타박상을 입은 체로 낑낑대고 있었다.

시비를 당한 시라소니는 아무 상처없이 말짱하게 서있는데, 시비를 건 학생들은 모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흥건히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니,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학생깡패들은 애시당초 시라소니의 상대가 되지못했다.

중학교때부터 시작해서 신의주 뒷골목에서 수많은 강자들을 상대로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왔고, 그 때마다 모두 승리를 했던 싸움천재 시라소니가 아닌가!

시라소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 쎈 주먹과 날렵한 스피드, 무릎치기와 팔꿈치치기, 발치기, 박치기 등 엄청난 위력의 타격능력과 다양한 싸움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신출귀몰한 싸움테크닉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신출귀몰한 싸움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북한 함경도는 물론, 만주와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강자들과 겨뤄 모두 쓰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1대 40의 대결에서도 승리한 시라소니의 싸움스팩을 어떻게 풋나기같은 학생깡패들이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시라소니가 학생깡패들을 모두 쓰러뜨렸다는 소식이 동대문사무실의 조직원들에게 들어갔고, 조직원들은 초긴장을 하면서 시라소니를 기다렸다.

시라소니가 드디어 동대문사무실 건물안으로 당당히 들어갔고, 그곳에는 조열승과 임화수 등 부하들 10여명과 맏형격인 김사범이 시라소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라소니가 회장실 앞에 버티고 있는 조열승에게 다가가 ‘어이 덩대 안에 있네!’라고 묻자, 조열승은 시라소니에게 ‘형님, 그만큼 돈을 많이 가져갔으면 됐지, 또 돈 요구하러 오셨소!’ ‘이젠 고만 좀 하시요! 형님, 그냥 돌아가시면 아무일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계속 이정재를 찾자, 다시 김사범이 나타나 ‘형님, 우린 더 이상 드릴 돈이 없소, 만일 그냥 안돌아간다면 큰 낭패를 겪게될 것이요!’라고 말했고,

그래도 시라소니가 막무가내로 이정재를 계속 찾자, 김사범은 ‘애들아! 시라소니를 태워버려!’라고 소리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이 김사범의 말과 함께 옆방에 있던 조직원들이 나왔고, 책상아래에 숨어있는 조직원들이 튀어나오면서 10명의 조직원이 20명으로 불어났다.

비겁하게도 이곳저곳에 숨어있던 조직원들이 합세해서 그 비좁은 사무실안에서 20명의 깡패들이 시라소니 한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맨먼저 행동대장인 김동진과 그의 부하 두명이 시라소니에게 돌진했다.

김동진이 먼저 시라소니에게 오른주먹을 날렸고, 그러나 이내 ‘악’하는 외마디비명과 함께 쓰러진 사람은 시라소니가 아닌 김동진이었다.

김동진이 날린 주먹을 살짝 피한 시라소니가 그대로 박치기를 날려 김동진의 머리를 받아버렸고, 그 한방에 김동진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김동진의 부하 두명이 시라소니에게 주먹공격을 날렸지만, 머리를 숙여 잽싸게 피한 시라소니는 오른주먹으로 복부를 강타해 한명을 쓰러뜨렸고, 발차기로 다른 한명의 턱을 강타해서 그 또한 쓰러뜨렸다.

이처럼 초반전에는 시라소니는 김동진과 두부하들을 간단히 쓰러뜨리면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명이 쓰러졌음에도 나머지 17명의 장정들이 시라소니를 에워싸면서 공격을 해왔고, 이들 한명 한명을 주먹으로 치고 발차기를 해서 쓰러뜨리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던 시라소니가 사무실중앙 쪽으로 몰리면서 완전 포위되고 말았다.

완전 포위당한 시라소니는 동서남북 네 군데에서 적군의 동시공격을 받게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됐다.

이렇게 포위상태에서의 싸움은 시라소니에게는 매우 불리한 싸움이 된다.

그러자, 시라소니는 사무실 가장자리에 있는 책상을 응시했고, 곧바로 뛰어서 책상위로 올라갔다.

사무실벽을 등지고 책상위에서 싸움을 하게되면, 적의 포위공격을 피할 수 있고, 책상 위라는 상대적으로 높고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게 되면, 적의 타격을 최대한으로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책상위로 올라간 시라소니는 책상위로 올라오려는 고일심을 발로 차서 쓰러뜨렸고, 책상 위로 올라오려는 이석재를 박치기로 들이받아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책상위에서 싸우면 장점이 많은데, 상대방이 책상위로 올라와야만 자신을 공격할 수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책상위로 올라오는 순간에, 위에 있는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선제 타격해서 제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상위로 올라와서 싸우는 시라소니는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명의 조직원들이 책상위로 올라오려고 하다가 시라소니의 발차기공격을 받고 바닥에 고꾸라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고, 시라소니는 20명과의 싸움에서 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동진이 잽싸게 책상위로 올라왔고, 동시에 박남수, 이기만이 책상위로 올라오면서 시라소니는 동시에 세명의 공격을 받으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시라소니는 졸지에 수세에 몰리게 됐다.

박남수의 발치기를 맞고 시라소니는 책상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또다시 사무실바닥에서 십수명에게 포위당한 채 불리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에도 여러명의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시라소니는 신출귀몰한 싸움기술을 발휘했다.

시라소니는 정면에 버티고 있는 고일심을 발로 걷어차서 쓰러뜨려 길을 만들고는 엄청난 스피드로 책상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넘으면서 조직원들의 공격을 피해다녔다.

혼자서 많은 상대와 싸울 때에는 지형지물을 십분 이용해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 사무실에는 양쪽으로 책상이 10여개 정도 있었다.

시라소니는 또다시 또다른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바로앞에 버티고 있던 박남수의 이마를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고, 박남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시라소니는 엄청난 스피도로 이 책상 저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조직원들을 차례로 박치기로 들이받았다.

시라소니는 동대문 사무실안에서 20명이나 되는 조직원들과 싸움을 벌였지만, 전혀 다치지도 위축되지도 않았고,

이 책상 저 책상을 뛰어넘는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을 발휘하면서 적들을 교란시키고 있었고, 조직원들은 시라소니 한명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러자, 부두목격인 조열승이 시라소니 앞쪽으로 달려오면 오른주먹을 날렸는데, ‘악’소리를 내면서 쓰러진 사람은 시라소니가 아니라 조열승이었고, 시라소니의 박치기가 먼저 터졌던 것이다.

동대문사단의 2인자였던 조열승이 시라소니의 박치기 한방을 맞고 그대로 실신KO당하고 말았다.

이제까지 싸움이 시작된지, 무려 30분이나 지났지만, 20여명의 이정재부하들은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지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책상 이쪽 저쪽을 뛰어넘으면서, 이정재부하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고, 자신의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조직원들은 수십분간 시라소니를 계속 쫒아다녔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눌려서 좀처럼 그를 잡지못하고 허탕질만 했다.

이렇게 시라소니를 더이상 맨손으로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석재는 드디어 책상밑에 감춰두었던 마대자루를 열었고, 그 안에 있는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조직원들도 너나할 것 없이 마대안의 쇠파이프와 손도끼, 삽자루를 들고서 시라소니에게 돌진해왔다.

원래 동대문파의 계획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시라소니를 제압하는 것이었는데, 만일 맨손제압이 불가능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김사범과 이석재, 김양수 등 핵심요원들은 더 이상 시라소니를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는, 마침내 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직원들이 전부 무기를 들고 공격하자, 그동안 우세를 유지해왔던 시라소니는 단번에 수세로 몰리게 됐다.

아무리 싸움잘하는 천하의 싸움꾼 시라소니라고 하더라도, 쇠파이프와 손도끼같은 금속무기로 공격한다면, 결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박남수가 쇠파이프를 휘둘러서 시라소니의 머리를 강타했고, 시라소니가 충격을 받고 잠시 주춤한 사이에 이기만이 손도끼로 시라소니의 오른쪽 정강이를 찍었는데, 놀랍게도 시라소니는 삽자루에 맞으면서 동시에 이기만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을 받은 이기만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두 번의 공격을 받은 시라소니는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주춤거리고 있었는데, 연이어서 김양수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시라소니는 그만 그로키상태에 몰리고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이석재가 손도끼로 시라소니의 오른쪽 다리를 찍자, 시라소니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석재의 이 마지막 손도끼공격에 큰 충격을 받은 시라소니는 결국 그대로 침몰하고 말았다.

이렇게 쓰러진 시라소니에게 조열승과 박남수가 달려들어 손도끼와 삽자루로 내리쳤고, 연타사례를 당한 시라소니는 그대로 기절하고 만다.

흥분할 대로 흥분한 이석재는 밖에 나가 커다란 돌을 들고와서 시라소니의 얼굴에 내리찍으려고 하자, 급히 김사범이 말리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김사범은 시라소니가 쓰러지자, ‘동양최고의 주먹이 쓰러졌다’고 말했다.

동양최고의 주먹 시라소니는 동대문 사무실에서 손도끼, 쇠파이프, 삽자루 등 무기로 무장한 20명의 행동대원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하면서 침몰하고 말았다.

시라소니가 맨손으로 싸울 때에는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을 발휘해서 20명이나 되는 적들과 무려 30분 동안 맞서면서 우세한 싸움을 벌여나갔지만,

무기를 사용한 적들의 비겁한 공격으로 결국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

시라소니가 쓰러지자, 조직원들은 시라소니를 가마니로 싸서 반도병원 앞쪽 골목에 갖다버렸고, 그 사실을 명동파에게 알려줬다.

시라소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명동파조직원들은 쓰러진 시라소니를 백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시라소니를 본 담당의사는 ‘원 송장을 가져왔냐!’며 질타를 했다고 한다. 조사결과, 시라소니는 왼쪽다리만 빼놓고는 몸의 전체가 부러졌고 만신창이가 됐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주먹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참혹한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전말이다.

한반도와 만주, 중국대륙을 누비고다니면서 기라성같은 국제주먹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동양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던 시라소니였지만, 이정재조직의 비열한 마수에 걸려서 한순간에 패배의 낭떨어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집단구타를 당한 시라소니는 백병원에서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이겨내어서 6개월 만에 부상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시라소니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 팔당댐 부근의 한 야산에 가서 재활훈련에 돌입했고, 칼던지기와 주먹단련, 발차기 등 자신의 신체를 향상시키기 위한 특수훈련을 지속했다.

시라소니는 그 후 이정재에게 복수를 하기위해서 여러번에 걸쳐 그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그 때마다 석연치않은 이유로 그의 복수행위는 무산됐다.

그리고 이정재는 자유당정권의 2인자인 이기붕과 손을 잡고서 동대문사단을 정치세력화했고, 자유당의 2인자인 이기붕의 비호를 받게된 이정재는 동대문사단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주먹조직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게된 이정재였기에 시라소니는 더 이상 자신의 힘만으로 이정재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그에 대한 복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치권과 결탁한 이정재는 자신의 동대문주먹사단을 활용해 자유당정권이 획책한 수많은 정치테러에 앞장섰고, 6·15부정선거를 일으키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자유당정권의 불의에 항거한 대학생들이 4.19의거를 일으켰고, 또다시 5.16혁명을 거치면서,

새롭게 들어선 군사혁명정부에 의해 이정재와 동대문조직의 간부들은 정치테러를 저지른 혐의로 혁명재판에 회부되었고, 결국 이정재는 사형선고를 받고, 1961년 9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시라소니에게 잔인하게 집단린치를 가한 이정재는 비록 시라소니에게 보복을 당하진 않았지만, 그보다도 더 무서운 군사혁명정부의 재판에 의해 45세의 나이에 사형당하는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시라소니는 집단테러를 당한 후에, 인천으로 진출해서 몇 년간 더 주먹활동을 했지만, 결국 기독교에 귀의하여 복음전파활동에 전념하면서 편안한 여생을 살아갔고, 1983년 1월 25일 68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