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녀 김아라의 프로필, 탈북스토리와 미모

2021. 11. 24. 21:24연예인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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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미녀 김아라의 프로필과 미모, 감동적인 탈북이야기

오늘은 탈북녀 김아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김아라는 방송 ‘이만갑’에서 눈에 띄는 미모와 여성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고있는 탈북미녀랍니다.

방송 ‘이만갑’에서 미모와 입담으로 방송의 인기를 높여주고 있는 탈북녀 미인 3인방으로 신은하와 한수애, 그리고 김아라를 꼽을 정도인데, 특히 김아라는 대중들의 높은 인기와 큰 관심을 받고있습니다.

방송 ‘이만갑’에서 환한 빛이 발산될 정도로 가장 예쁘고 청초한 미모를 간직한 김아라에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전에는 ‘이만갑’에서 그냥 얼굴만 예쁜 미인으로 말도 제대로 하지않고, 마네킹처럼 앉아만있던 무미건조한 김아라였지만,

방송 ‘이만갑’이 개편된 후에 다시 출연한 김아라는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여러 다양한 주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발언도 많이 하는 등 전과 많이 달라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대중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답니다.

더욱 세련되고 예쁜 모습으로 돌아온 탈북미녀 김아라! 김아라는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탈북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만갑’을 대표하는 미녀 탈북녀 김아라의 탈북이야기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 김아라의 프로필

출생일 - 1991년 9월 7일생, 나이 31세

출생지 - 함경북도 회령시

가족 - 어머니,와 여동생

키 - 158cm, 몸무게 45kg

혈액형 - AB형

종교 - 기독교

학력 - 명지전문대학 뷰티아트과 졸업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 휴학

소속사 - 블레스이엔티

데뷔 - 2012년도 ‘이만갑’으로 데뷔.

김아라는 북한 회령에서 살다가 2003년도에 북한을 탈북했고, 2009년도에 중국에 있던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녀이지요.

한국에 입국한 후 명지전문대학을 다니던 김아라는 2012년도에 방송 ‘이만갑’에 출연한 후, 고정출연자로 활발한 방송활동을 벌여왔고,

이 후 배우로 진출하면서 영화 ‘원더플 고스트’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위대한 유혹자’ 등 여러편의 작품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자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깜찍하고 예쁜 미모를 간직한 김아라는 탈북녀 중에서 방송과 연기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방송 ‘이만갑’에서는 탈북녀 중에서 최다출연을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있는 그녀는 ‘이만갑’에서 가장 예쁜 미인의 아이콘같은 존재감이랍니다.

항상 청순하고 예쁜 얼굴로 방송 ‘이만갑’에서 뭇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있는 김아라이지만,

그녀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탈북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아라의 탈북이야기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 김아라의 탈북스토리

김아라는 ‘먹방아라’라는 별명이 있는데,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가 하면, 김아라가 북한에 있을 때에, 쥐고기와 뱀고기, 메뚜기 등 각종 벌레까지 다 먹어보았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고 합니다.

과연 김아라가 이런 혐오동물을 먹고싶어서 먹었겠습니까? 아니랍니다! 그녀는 북한에서 너무나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먹기싫어도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이런 동물들을 김아라는 북한에서 많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북한에서 살았을 때, 엄청 빈궁하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이랍니다.

한국사람들은 절대 손에 대지도않는 이런 혐오동물들까지 잡아먹었을 정도로 북한에서 김아라는 무척 궁핍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빈궁하게 살면서 혐오동물을 잡아먹은 건 비단 김아라 뿐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1991년도에 북한에서는 식량공급이 중단되어서, 김아라가 살았던 회령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지못해서 길거리에 쓰러져있거나, 병에 걸려서 죽는일이 허다했다고 합니다.

북한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있는 많은분들은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이야기를 통해서, 북한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김아라는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에 살았답니다. 그런데, 1991년도 당시 북한당국에서 지급해주던 식량배급이 완전 끊겨버렸답니다.

김아라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이렇게 네식구가 함께 살고있었는데요.

북한에서 식량배급이 끊기는 바람에, 김아라가족은 먹고살기가 매우 힘든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되었답니다.

김아라가족은 북한에서는 상당히 큰 편인 30평대의 큰집에 살고있었는데, 식량부족으로 온식구가 굶어죽게될 긴급한 상황에 처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살고있던 큰 집을 식량을 받고 넘기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30평대의 집을 고작 옥수수 10kg과 교환해버렸답니다.

그녀가 살던 큰 집을 큰 손해를 보면서까지 고작 옥수수 10kg과 바꿔버린 이유는 그만큼 먹고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오랫동안 굶주려서 식구 전체가 굶어죽게 생겼는데, 죽지않으려면 옥수수 10kg라도 그녀의 가족에겐 큰 식량이었답니다.

이렇게, 김아라가족은 자신들의 살던 큰 집을 식량과 맞바꾸면서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큰집을 넘겨주고 김아라가족은 아주 작고 허름한 집으로 이사해서 살았는데요.

그녀의 가족이 새로 이사한 집은 당장 천장이 쓰러질 것 같은 아주 작고 허름한 집이었고, 천정과 부엌에는 여러마리의 쥐들이 득실득실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주민들에게는 정말 어려웠던 최악의 시기라고 합니다. 김아라가족 뿐만아니라, 그녀가 살던 동네에서는 식량배급을 받지못해 굶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녀가 살던 동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길거리에는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있고, 심지어 죽은 사람의 시체들도 여기저기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6살 정도되던 시기에, 김아라는 길거리를 걸을 때에는 일부러 땅만 보고 걸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음식찌꺼기라도 주워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길거리 한복판에 엄청 큰 호박씨가 하나 떨어져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김아라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그 큰 호박씨를 냉큼 주워 먹었답니다. 그런데, 그 호박씨에서 아주 역겨운 구렁내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까, 염소가 배설한 똥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녀가 먹은 호박씨는 염소가 배설하면서 변속에 있던 호박씨였던 겁니다.

결국 어린 김아라는 염소가 배설한 호박씨를 먹고 간신히 허기를 모면한 셈이랍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오랫동안 굶은 김아라가 그만 병이 나서 몸져눕게 되었답니다. 너무 오랫동안 굶주린 김아라가 기운이 너무 빠져서 병석에 눕고 말았는데요.

그러자, 김아라의 아버지가 그녀를 회복시키고자 어디 가서 고기를 한아름 구해왔고, 김아라에게 ‘토끼고기를 갖고왔으니, 어서 먹으라’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먹였는데요.

며칠동안 굶주렸다가 처음 고기맛을 본 김아라는 미친 듯이 고기를 먹었답니다. 그 당시 김아라가 맛 본 그 고기는 너무도 맛이 좋고, 정말 꿀맛이었다고 합니다.

김아라는 그 고기가 너무 맛이 좋아서 세 마리나 먹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슬며시 물어보았는데요. 김아라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 고기는 쥐고기라고 말해줬다고 합니다.

그녀의 집 천장과 부엌, 변소 주변에는 늘 왔다갔다 하는 들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김아라가 너무 굶주린 나머지 병이 나서 몸져눕게 되자,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서 세 마리의 쥐를 잡아서, 그녀에게 토끼고기라고 속여서 먹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쥐고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김아라는 그 쥐고기가 쫄깃쫄깃하고 너무 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90년대 중반, 김아라의 가족 전체가 너무 굶주리게 되자, 그녀의 아버지는 커다란 집을 옥수수 10kg과 맞바꾸면서 간신히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김아라의 가족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은 쥐와 벌레가 득실득실한 낡고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집과 맞바꾼 옥수수 10kg은 얼마 지나지않아서 모두 소진되었고, 김아라가족은 또다시 굶주리는 상황에 처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돈을 벌어오겠다고 말하면서 중국으로 떠나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어머니는 한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녀의 어머니가 중국으로 떠나간 후, 김아라는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답니다.

두 딸을 모두 양육하기가 힘들어진 그녀의 아버지는 김아라의 여동생을 외갓집으로 보낸 후, 김아라만 맡아서 양육하게 되었는데요.

그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산에 가서 도라지와 고사리, 송이버섯 같은 산나물을 따갖고 와서 그것을 쌀과 바꿔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는데, 그 새엄마는 세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녀의 가족은 먹고살기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김아라는 새엄마가 데리고온 세명의 이복형제들에게 이리저리 치였을 뿐만아니라, 새엄마로부터 심한 구박을 받으면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게되었습니다.

새엄마가 김아라를 구박하는 것을 못마땅히 생각한 그녀의 아버지가 새엄마와 대판 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새엄마의 형제들이 달려와 가세하여, 김아라 아버지를 집단으로 구타하였고, 그녀의 아버지는 엄청난 부상을 입었습니다.

김아라가 12살이 되던 그 해에, 김아라의 아버지는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실종되고 없어지자, 새엄마는 김아라를 더욱 노골적으로 구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엄마는 홀로 남은 김아라를 매정하게 집에서 내쫒아버렸답니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김아라는 집에서 쫒겨났고, 쫒겨난 그녀는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꾸던 텃밭으로 갔습니다.

김아라는 그 텃밭 근처에다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작은 움막을 지었고, 그 텃밭에서 무와 야채를 뽑아 먹으면서,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어렵게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종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움막에서 혼자 지내던 어린 김아라는 그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됩니다.

깊은 한밤 중에는, 산에서 내려온 사나운 산짐승들이 움집에서 홀로 잠자는 그녀를 공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밤잠을 설친 날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달이 지난 후, 더 이상 혼자 살기가 힘들어진 어린 김아라는 아버지의 지인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요.

그렇지만,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그 남자는 김아라를 양육하기가 곤란했기에, 자신의 누나집에 김아라를 양녀로 추천해주었다고 합니다.

눈치가 빠른 김아라는 그 지인의 누나집에서 손수 설겆이도 하고 청소도 하는 등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누나집의 양녀로 들어가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양녀이지, 그 집에 들어간 김아라는 어린 나이에 온갖 궂은일을 다 도맡아서 하는 식모나 다름없었답니다.

12살 어린 나이였던 김아라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방앗간에 가서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서 장에 나가 내다팔았고, 장사가 끝난 후에 집에 돌아와서 빨레를 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다 도맡아 했답니다.

김아라가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그녀는 곧바로 쫒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답니다.

그 양부모는 김아라가 예뻐서 양녀로 삼은 게 아니라, 그녀를 소처럼 부려먹기 위해서 양녀로 입양했던 겁니다.

그 집에서 몇 년 동안 소처럼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탈진한 김아라는 ‘이렇게 힘들게 살 바에는 차라지 잘못되는 일이 있더라도 중국으로 가서 살자!’라고 결심했고, 1년 후인 2003년도에 그녀는 브로커에게 부탁해서 중국으로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김아라가 만난 브로커는 중국에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보낸 브로커였답니다.

중국에서 수년동안 온갖 고생을 다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그녀의 어머니가 딸 김아라를 데려오기 위해 돈을 주고 브로커를 기용했고, 그 브로커가 북한 회령으로 건너와서 김아라를 만났던 겁니다.

2003년, 13살이 되었던 김아라는 브로커의 도움으로 마침내 지옥같은 북한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중국의 사랑하는 어머니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수년동안 북한에서 부모없는 고아처럼 온갖 천대를 받으면서 살아왔던 김아라는 브로커의 도움으로 차디찬 두만강을 건너는데 성공했고, 중국에서 극적으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답니다.

중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게된 김아라였는데, 13살이 된그녀는 자기이름도 쓸 줄 몰랐고, 글도 읽을 줄 몰랐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일찍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버지를 잃고난 후,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던 힘든 시절이라, 교육을 받을 형편이 되지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김아라는 중국으로 간 그 때부터 초등학교 1학년생처럼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했습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수년동안 한국말도 익히고, 중국말도 익히면서 교육을 받았던 김아라는 어느날 TV를 보면서, 우연히 한국방송을 접하게됩니다.

청소년기의 예민한 나이에 김아라는 한국방송을 보면서, 한국이 북한보다 더 잘살 뿐만아니라,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한반도 남쪽에 자신과 핏줄이 같은 한민족이 살고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됩니다.

매일같이 TV를 통해 보게된 한국은 그녀에게는 북한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처럼 느껴졌고, 북한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더욱 인간적이며, 훨씬 더 발전된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동경심을 갖게되었답니다.

김아라가 19살이 되던 해, 김아라는 어머니에게 한국에 가서 살고싶다는 소망을 말했답니다.

2009년, 김아라의 재촉에 의해서 그녀의 어머니는 브로커를 기용해서 먼저 한국으로 떠나갔고, 그리고 김아라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한국으로 입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2009년 19살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입국한 김아라의 마음은 너무도 행복했지만, 북한과는 너무도 다른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공부를 통하지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아라는 밑바닥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했고, 수년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하루 17시간 공부를 하는 등 미친듯이 공부에 매달렸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김아라는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획득할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검정고시를 통해 중둥교육을 이수한 후, 김아라는 명지전문대에 입학해서 학사학위를 취득하던 그 해에 방송 ‘이만갑’에 출연한 것이 그녀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고립되고 외로운 탈북녀로 살아왔던 김아라였지만, 방송 ‘이만갑’에 출연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고, 그 때부터 여기저기서 그녀에 대한 출연섭외가 쇄도했답니다.

또한 김아라는 방송 ‘이만갑’에 고정출연하면서 방송출연진 중 가장 예쁜 미녀로 각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와 관심을 받게되었답니다.

김아라는 윤기나는 새하얀 피부와 잘 빠진 균형잡힌 몸매, 그리고 커다란 눈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청순한 미모로 인해서,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탈북인 중 가장 예쁜 미녀의 아이콘으로 큰 인기를 끌게됩니다.

방송에서 그녀의 예쁜 미모가 크게 어필되면서, 큰 주목을 받게된  김아라는 방송 ‘이만갑’의 인기를 높여주는 방송의 보물 같은 존재감으로 급부상하게 되는데요.

김아라는 ‘이만갑’ 출연으로 얼굴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5년도엔 웹드라마 ‘아는 사람’의 여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었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아라는 ‘막돼먹은 영애씨’ ‘위대한 유혹자’ ‘사랑의 불시착’ 등 연이어서 여러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가게 됩니다.

또한 김아라는 영화계에서도 진출해서, ‘원더풀 고스트’ ‘뷰티풀 데이즈’에 조연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으며, ‘청둥아 진정해’에는 주인공으로 출연해 개성있는 연기를 펼치는 등 영화배우로서도 큰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살면서, 여러번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드는 등 매우 위태로운 삶을 살았던 김아라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입국에 성공했고,

모진 고생 끝에 한국에서 인기 높은 방송인이자, 여배우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의 탈북과 한국입국은 그녀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준 행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젠 방송 ‘이만갑’에서 김아라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김아라는 ‘이만갑’의 인기를 올려주는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감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토록 큰 시련과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도 꿋꿋하게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으로 건너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탈북녀 김아라가 너무도 대견하고 장하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 김아라는 북한에서 겪은 핍박과 고통스러운 삶은 모두 떨쳐버리고,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나가길 바라며,

그녀의 소원대로 한국에서 사랑 듬뿍 받는 최고의 인기여배우로 성장해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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